월요일, 2월 14, 2005

아름다운 신앙과 전통에서 나타나는 율법과정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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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앙에 대한 그 아름다운 모범들을 맹목적으로 고수한다는 것은 전통을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즉 보수라는 개념,그것이 맹목적 사수라는 개념으로 이해되어질 수 있다면, 그것은 배척되어지는 것이 옳다는 것입니다.
* 물론 분별하여서 주 안에서 동일한 고백을 할 수 있지만 강요받게 되어지는 것은 동일한 현상적인 판단에서 있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재고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 실재론의 부제의 신학적 입장에서는 최선이 되어질 수도 있지만 그 최선은 어그러진 것으로 말할수 있음에 자성의 시간이 되어야 할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신앙의 전통이해에 대하여서 칼빈이 신앙의 전통을 어떻게 이해했는가 하는 것에서 기본적인 입장을 밝혔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것과 같은 일반적인 것과 우리의 일상적인 것의 상관성이라고 하는 것을 생각해보는 것이 귀할 것 같아서 글을 남겨봅니다.

아름다운 전통과 율법화 과정..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우리 인생이 주의 뜻하심을 나타낼 때에는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고 참으로 사람들이 보기에 너무나 아름답게 받아들여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그 아름다움이라고 하는 것을 지속하고자 하는 그러한 중심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문제는 그러한 것의 지속적 행위라고 하는 것에 주님께서 주시는 믿음을 획일화하게 되어지는 경향이 나타날 수 있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행위에 대한 해석의 일반적인 획일적 규정이라고 하는 것이 율법적인 성격으로 나타나며 그것은 율법화 되어지는 경향과 실제를 초래하게된다고 하겠습니다.

역사적인 한 예로서 언급하게 되어진다면 여러가지 인식의 획일적인 판단을 가능하게 하였던 것으로써 존재론에 대한 이해의 획일적 개념을 지적할 수 있습니다.(각주1)

우리의 믿음의 고백들이 종들의 고백인데 그러한 것을 인위적인 것으로써 고수하고자 하는 것에 있어서는 진정한 전통의 인식과 사실들을 이어갈 수 없다고 하는 것을 말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전통에 대한 이해라고 하는 것이 획일화 되어지는 가운데서 종의 고백이 어떤 성문법이 아니라고 하여도 불문법적인 개념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으며 인식의 변화를 가져온다고 하여도 그것은 그러한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는 경향도 말할 수 있겠습니다.(각주2)


아름다운 신앙과 전통을 이해함에 있어서 존경과 이해가 합당한 정도의 공존되어진 가운데서 진실로 바르게 이어갈 수 있다고 함을 말할 수 있겠습니다. 맹목적인 존경은 그 아름다운 신앙을 율법적 개념으로 어그러지게 할 뿐으로 나타날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하는 것이 아름다운 신앙과 전통을 율법이 아닌 진정한 사실로 이어가며 또한 주의 뜻하심을 증거하는 귀한 살아있는 재가가 있는 것으로 나타낼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함이 하나의 지혜로 자리매김 되어질 수 있을 것으로 봅니다.






각주1) 후스토 곤잘레스, 기독교사상사 중세편 II,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출판국 198-210p.12세기 문예부흥 부분에서..

곤잘레스는 안셀름의 저서를 이야기 하면서 안셀름의 신학방법론에 대한 간략하게 언급함과 그의 '프로스로기온'에서 신존재에 대한 언급을 합리적으로 말하기 위한 노력이 있었고(201p.) 여기서 존재론을 말할 수 있음을 언급하고 있습니다.(201p.) 또한 그곳에서 그는 어려운 표현을 넘어서기 위해서 성경에 대한 기술적 표현보다도 합리적인 개념에서 말하기를 원했고 그러한 가운데서 존재론적 실제론이라고 함이 출발하게 되었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

막스 밀러는 그의 '철학소사전'(막스 뮐러,알로이스 할더, 강성휘 이문출판사)에서 기초존재론을 말하면서 이것이 하이데거의 존재론에 나온다고 함을 시사하고 있다.(290~295p 참고) 또한 이러한 하이데거에 대한 평가는 아일랜드 출신의 철학교수인 리챠드 커니 교수(현대 유럽철학의 동향, 마틴하이데거에 대한 언급중에서..)에게서 찾아 볼 수 있는데 그가 카돌릭의 신학적 영향을 받았다는 것의 언급은 이처럼 존재론적 실재론에 대한 영향으로 추론이 가능하다고 하겠다.


이처럼 이러한 존재론적 실재론이라고 하는 것에 대하여서 사람들은 식상해 하면서 인식론적인 존재론적 입장에서 상대적으로 부정하고자 하는 노력들을 볼 수 있다 (실제로 막스 밀러의 입장에서는 하이데거의 기초존재론을 말함에 있어서 중세적 존재론의 기본이라고 함을 전제로 한 그것을 비판한 입장임을 말하고 있다. 막스 뮐러,알로이스 할더, 강성휘 철학 소사전 이문출판사290~295p 참고)

이러한 것을 말하는 것은 사실 쉽게 말한다는 개념의 적용적 개념을 생각하다가 바르게 합당하게 증거한다는 개념을 마음에 두지 못함에 대한 판단과 또한 중세적인 잘못된 존재론적 실제론에 입각한 것이 존재론의 본래적인 기초인 것과 같이 인식이 굳어져서 합리성의 방향성과 인식적 사실들을 잘못되게 이끌었다. 그러한 중세적 존재론에 대한 것의 사실을 말하지 못하기 때문에 논쟁이 있어왔고 인식의 잘못된 사고의 전통은 존재론에 대한 생각을 그렇게 생각하도록 하는 잘못된 기정사실로 굳어지게 하였고 이것은 인식의 율법화 되었던 것이다

그러한 것은 칼빈이 전통을 이해함에 있어서 삼위하나님에 대한 이해라고 하는 것에 있어서 획일적 고백을 강요받음에 반대하였던 것도 그러한 것에서 기인되어진 것으로 이해되어질 수 있다.

진정으로 자존의 하나님으로부터의 사실을 말할 수 있다는 것과 그러한 가운데서 자신의 믿음의 신앙고백이라고 하는 것이 합당하게 고백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고 자신의 신앙고백이라고 하는 것이 앞서 고백되어진 것과 동일하게 고백되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전통을 말하고 이어가야 함이 옳은 것이며 아름다운 신앙이 율법화 되어지는 것을 벗어나 더욱 풍성한 주의 증거가 되도록 힘써야 함이 옳은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각주2) 막스 뮐러,알로이스 할더, 강성휘 철학소사전 이문출판사 290~295p.

여기서는 막스 뮐러와 알로이스 할더는 하이데거가 존재와 존재론적 입장의 차이를 말하면서 존재와 존재론에 대한 언어적 차이를 말하는 가운데 존재의 소외라는 개념을 주장하고 있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

이러한 것은 그 비판으로 실제적인 범주를 벗어났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상대적인 차이와 반박이라고 하는 것은 그 안티적 개념에서의 상관성을 항상 말할 수 있고 주관적이라도 하더라도 강조점의 이해와 납득에 있어서는 동일한 범주를 형성할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상대적이라고 하더라도 그러한 인식의 불연속적 사상을 말할 수 있는 실제론에 달려진 것이다.

그러면서도 한가지 생각하게 되어지는 것은 불가지론적 입장에서의 가해성을 말하는 철학적 불가해성적 입장에서는 그러한 실재론에 입각한 실제론을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것이 전통이해에 있어서 화석화적인 율법적 경향을 아주 정교하게 만들게 되어지는 자리에 서고 말았다.

그리고 불가지론적 입장에서 덕이라는 개념의 용인으로 인한 철학적 불가해성이라고 하는 것에 대하여서, 신학적 불가해성, 자존의 하나님으로부터의 절대의 정당함에 따른 합리성으로써의 그것은 상대적인 연속성의 사실의 형식을 나타내면서도 실제적인 불연속성을 말할 수 있게 되어짐에 따라서 인식의 범주의 상관성에 따른 불가지론적 자리에서 벗어나며 실제를 말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한 사상적 입장은 종교개혁자로서의 칼빈에서 이루어져서 오늘날 게할더스 보스의 신학적 입장으로 흐른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http://geocities.com/vossca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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