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스토 곤잘레스의 사상사 세권을 접할 수 있고 또 그의 사상적 입장의 주관적 신학적 입장의 사상사를 간추린 책도 있는데(각주 1) 그 책중에서 한 부분적 언급을 놓고 생각하며 나눔이 있었으면 합니다.
그러한 것은 신학과 철학에 대한 이해를 지난 세기에서는 어떻게 행하고 있고 오늘날 작금에서는 또한 어떠한 방향이 이루어지지고 있고 그 철학에 대한 이해를 신학에서 어떻게 함이 옳은 것인가 하는 것을 마음에 한번 둠도 필요하기 때문에 이 글을 준비합니다. 다소 신앙에 있어서 철학적인 것이 무슨 필요가 있는가 그것에 대하여서 극단적 배척과 극단적인 성경택스트주의적 입장이 나누어질 수 있는 가운데서 역사적 안목이라고 하는 것을 곤잘레스 저자의 안목에서 배울 수 있다고 함을 지적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먼저 인용하고 본론을 기술하도록 하겠습니다. 필요에 따른 것은 각주로 참고를 달아둡니다.
인용)
고전철학을 사용했던 변증론자들의 경우가 - 사실상, 이들이 변증론자의 대다수였지만 - 이에 대한 분명한 보기가 된다. 그들은 기독교가 이교철학의 최선의 것과 모순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하려 했으며, 마침내 그들과 그들의 후계자들은 성경의 의미와 기독교의 본성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그 철학을 기본적인 해석도구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J.L. 곤잘레스 ‘그 세가지 신학의 유형으로 살펴본 기독교 사상사’ 이후정 컨콜디아사 p. 136.)
본론에 즈음해서..
저자의 사상적 역사인식의 모델은 A 형 B형 C형, 으로 나뉩니다. A형은 카르타고의 신학적 경향으로 터툴리안을 중심으로한 사상적 경향을 말하고 있고 B형으로는 알렉산드리아 지역을 중심으로 한 오리겐의 사상적 중심을 배경으로 하고 있고 C형은 안디옥 소아시아를 중심으로 한 사상적 입장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인용되어진 부분은 A형과 B형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터툴리안의 법철학적 개념과 오리겐의 동일철학적 개념의 입장이라고 하는 것이 기술되어지고 있는데 도덕적인 개념의 법적인 것과 기독교가 철학적인 것의 최선이라고 하는 것을 말하는 오리겐의 사상적 입장이라고 하는 것이 세상적인 개념의 모습과 동일한 정치철학적 개념으로 말할 수 있는 것과 같음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실제적으로 곤잘레스 저자는 카돌릭과 개신교의 여러 가지 차이점의 논제를 말하지만 그러한 철학적 경향이라고 하는 개념을 말하는 전통에 같이 있는 것이라고 함을 말하고 있는데(각주 2) 이것은 종교개혁이라고 함에 있어서 카돌릭과 기독교의 실재론적 차이라고 함을 생각하지 못하신 것으로 지적되어질 수 있습니다. 종교개혁은 하나님의 실재에 대한 견해의 차이가 실제적으로 부정과 긍정의 차이로 나타나는 것에 있다는 점을 간과하신 것으로 지적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점에서는 관점을 실제적으로 달리하면서도, 역사 인식의 상대적 표현이라고 하는 것은 상당히 중요하고 잘 지적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함을 말하게 되는 것입니다.
고전철학을 사용했던 변증론자들의 경우라고 하는 것은 서방신학을 말하고 있는 것인데 이는 터툴리안의 철학에 대한 부정적 입장이면서도 법적인 측면을 소개하고 주장할 때에 그 방법론은 역시 철학적 한 영역으로써의 기술적 방법을 따랐다고 함을 말할 수 있게 됩니다. 이와 같은 가운데서 저자는 인용된 본문에서 그러한 철학의 선한 것이라고 하는 것이 기독교와 상관성이 있다는 것은 마치 세상과 타협하게 되어지는 것으로 오해되어질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는 듯한 언급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대한 반론을 제시하고자 하는 것은 터툴리안이 철학에 대한 배척을 했다는 점과 그의 법철학이라고 하는 것 법 사상이라고 하는 것은 한마디로 취득시효(取得時效)적인 개념에서 권위적 사상의 정당함을 말하는 것으로 이것은 상술적 개념에서 상대적 개념에서 상대적 보편이라는 개념에서 출발하고 있는 것으로 하나님으로부터의 재가를 통한 법사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현상적 역사모델로써 간과하기 쉬운 것인데 이러한 중심의 사상들의 때로는 의도적이지 않았을 수도 있고 의도적일 수 있는 가운데서 세속적 타협과 세상의 정치논리적 개념을 만들어 낸 것이 아니냐는 판단을 가질 수 있는데 이는 그의 철학이라고 하는 것이 이미 자체적 정당함의 실재와 실제를 말하지 못하는 가운데서 출발했으므로 그의 철학적 개념이 기독교적 철학이라고 함을 잘 대변하는 것으로써의 사상적 존립을 가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은 유형 B로써 오리겐의 철학도 마찬가지로 그 철학의 선함을 위해 말하게 되어지지만 그러한 사상적 철학의 정체성은 기독교적인 철학의 실존을 말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기억하게 되어지는 터툴리안의 사상적 체계에서 삼위일체라는 용어를 얻게 되어지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러나 그러한 상식보편적인측면에서 하나님이 메여서 선함을 전혀 나타내지 못한다는 개념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하심으로 그의 뜻하심을 교회사에 나타내셨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사상적인 입장이라고 하는 전부가 하나님으로부터의 재가를 받은 것으로써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역사모델이해에서 있게 되어지는 철학적 인식에 존립에 대한 판단이라고 하는 것이 좀더 분별되어야 했다고 하는 것을 생각할 때에 저자의 역사이해에 있어서 종속적 의미로써의 구교와 신교이해라고 함을 말하고 그것에 있어서 철학적 상관성을 말하는 것은 비판되어야 할 것으로 말할 수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면서도 상당한 저자의 통찰력을 말할 수 있는 것은 그러한 고전철학을 사용한 변증론자들의 경우가 오늘날도 곤잘라레스의 언급과 같이 계속되어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연세대학교 철학교수님이신 장욱 교수님은 토미즘과 형이상학적인 인간학에 관점을 두고 있는데(각주 3) 그는 실제에 대한 것보다도 토미즘의 보편성이라고 하는 것에서 철학의 실존을 말할 수 있는 것과 같이 언급하고 있는데 이는 보편성이라고 하는 것의 재가를 말할수 있는 실제를 생각하지 않고 있음을 지적할 수 있습니다. 즉 오늘날도 중세의 사상적 실존에 따른 구교적인 입장에서는 철학과 기독교의 상관성을 실재의 분별없이 계속하고 있다는 것을 말할 수 있는데 이것은 곤잘레스의 지적이라고 하는 것의 보편성과 객관적인 사실을 말하는 것이라고 함도 지적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결론에 즈음해서
철학이라고 하는 것을 무조건 배척한다는 그 사실은 성경적이지 않습니다.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성경의 기록이라고 하는 것이 하나님의 직접적인 계시로써 기록하도록 하심도 있고 또한 인간의 내면적 성찰이라고 하는 개념을 구별하여서 실제적으로 성경을 기록하게 하신 것이란 점을 기억할 때에 하나님 앞에서 재가를 받은 구속철학의 합당함을 말할 수 있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성경의 구속철학적 입장이라고 하는 것과 우리 일반 성도들의 성경에 근거한 철학적 입장이라고 하는 것은 그 상관성을 말하면서고 잊지 않아야 할 것은 성경은 특별영감의 계시적 차원에서 사용되어진 것이란 점과 우리 성도들도 일반 영감에 따른 것이란 점을 구별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즉 사도가 말한 것을 우리 성도들이 동일한 권위와 실제의 말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파생적 정당함에서 일반적 영감 안에서 동일하게 증거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각주 1)
그 세가지 신학의 유형으로 살펴본 기독교 사상사
J.L. 곤잘레스 지음 이후정 컨콜디아사
CHRISTIAN THOUGHT REVISITED:
Three Types of Theology
By Justo L. Gonzalez
Published by Permission of Abingdon Press.
Copyright 1989 by Justo L. Gonzalez
각주 2)
제국이 기독교화 된 후, 유형 C 신학은 점차로 잊혀졌으나, 유형 A는 유형 B로부터 유래된 몇가지 요소들과 함께 개정되어서 표준적인기독교 신앙이 되었다. - 특히 서방에서, 이 개정된 유형 A는 중세를 걸쳐 지배적인 것이 되었으며 중세신학의 대부분의 과정을 결정하였다. 종교개혁의 시기에, 비록 중요한 논제들이 교회를 갈라 놓았지만, 개신교와 구교 모두 일반적으로 그 신학의 변수 내에 남아 있었다. 이런 점에서 전통적인 카돌릭과 개신교 신학들은 같은 유형의 신학의 표현들이다.
(J.L. 곤잘레스 ‘그 세가지 신학의 유형으로 살펴본 기독교 사상사’ 이후정 컨콜디아사 p. 133. 제 2부 서구 신학의 경과 제목에서 언급한 내용중에서..)
이것은 개혁신학까지도 스콜라 신학의 연상으로 보는 입장인데 그러한 것은 리차드 밀러의 16세기 진정한 칼뱅신학이라는 책에서도 말하고 있는 것으로 지적되어질 수 있는데, 사실 이러한 것은 칼뱅의 실재론이 그 하나님의 이름에서 ?O을 수 있음에 대한 것을 말하지 못하는 가운데서 이루어지고 있는 언급들이다. 즉 사상의 실존이라고 하는 것의 연속성과 비연속성이라고 하는 개념, 그것이 그 하나님의 이름의 실재론적 측면에서 실재를 달리 할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하지 못하는 것으로 지적될 수 있다.
각주 3)
장욱 토마스 아퀴나스의철학(ens et veritas) 동과서 pp. 5-6 서언 중
...성 토마스의 철학은 여러 이유로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았다.
첫째, 중세는 이성적으로 궁핍한 시대이며 진정하고 순수한 철학적 사유가 부재하다는 편견이다. 즉 그리스도교로 인해 왜곡된 철학 사상만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중세는 이성적으로 빈곤한 시대가 아니며, 그리스도교 신학뿐 아니라 철학이 풍부하게 탐구된 시대이다. 중세를 거치는 동안 그리스 철학과 로마 철학은 유태, 아랍, 그리고 그리스도교 사상가들에 의해 지속적으로 연구되었다. 그리고 그 철학들은 13세기에 이르러 완성되었다. 그리스 철학과 로마 철학은 그리스도교 사상과의 접촉으로 인해 왜곡되거나 변질되기 보다는 그들이 지향하는 바를 달성하였다. 그리고 그 철학들은 그리스도교 사상의 지평 하에서 자신들의 한계를 드러내었다.
장욱교수님은 신학과 철학의 상관성을 말하면서도 13세기 철학의 완성을 말할 수 있고 긍정적인 신학의 시녀로써의 철학을 말할 수 있다는 점에서 아리스토텔레스적인 토미즘을 소개하고 있다. 그러나 철학자체라는 개념의 실재성을 임의로 말씀하기에는 토미즘에서는 실재론을 말할 수 없고 실제를 말할 수 있는 사상적 근거는 없다는 것을 간과하고 있음을 지적해둔다.
철학적 사고의 맹목적 비판과 그에 따른 성경택스트 맹목적 주장을 하는 분들에게 비판적 언급..
1. 상식철학이라고 하는 것의 보편성은 상식적인 측면에서 접근하는 사람들과 관념을 동일하게 할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지 하지 않는 상식적은 측면에서 현상을 그대로 이해하자는 현상학적 입장은 하나님을 마음에 두지 않는 사람들의 인식과 동일선상에 있습니다.
2. 오늘날 성경택스트만 주목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하나님의 뜻하심 안에서의 성경적 택스트를 무시하고 택스트로서의 성경만 본다면 하나님 믿지 않는 자로써 자신을 기만하는 자로 나타납니다. 그것이 분리된 삼신을 말하는 괴로움이 그의 소득이 되는 것입니다.
3. 정말로 성경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사람은 성경이 말하는 성경의 실존을 이해하고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개념에서 실존을 말한다면 하나님으로부터의 정당함에서 성경택스트 이해를 함이 옳은 것입니다.
4. 이 말은 현대의 포이엘바하의 자의적 당위성으로써 성경의 신인동형을 비판하는 개연성이 성립되어지지 않음에 대한 합당한 판단으로도 나타난다고함을 말해두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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